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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대우 CEO 박현주 월급쟁이 자수성가 이야기

30대 퇴사남 생존기 2021. 8. 3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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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회장 주린이 대학생 시절부터 현재

대학생 때부터 투자에 관심이 생겨 주식을 시작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래에셋대우 박현주 CEO 미팅하는 장면
미래에셋대우 박현주 ceo

 

이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자수성가하면 손꼽는 사람. 현재 재벌 서열 19위! 월급쟁이 직장인 신화 미래에셋 박현주 ceo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박현주ceo가 현재의 자리까지 왔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대학생 초보 투자자 시절

박현주 창업자는 학생시절부터 투자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졸업 후 해오던 투자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증권사에 들어갑니다. 더 커지고 싶다는 욕망에 스스로 퇴사하고 자기 회사를 차려 지금의 미래에셋그룹을 만들어 냈습니다.

 

지금처럼 너도나도 투자에 관심이 많은 시기에 이 이야기를 들으면 좀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고에 들어갔지만, 갑자기 아버지를 잃습니다. 한참을 방황하던 중 성적이 바닥을 찍습니다. 여기서 끝났으면 지금의 미래에셋 창업자는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실패해도 좋으니 성실하게만 살자'라는 조언에 재수를 해서 다시 대학에 들어갑니다.

 

용돈을 투자하다

이때 현명하신 어머니는 아들을 믿고 용돈을 특이한 방식으로 줍니다. 매달 주는 것이 아니고, 1년치 용돈을 일시불로 준 것이죠. 자산을 학생 때부터 직접 운용해서 살으라는 것이죠. 이때 자취방을 계약하는 것부터 모든 것을 스스로 경험하고 터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생인 박현주는 1년치 일시불로 받은 용돈을 가지고 주식을 시작합니다.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이 학생은 명동 증권사로 달려갑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시장이 발전 없인 안된다는 가르침을 받은 것이죠. 그리고 열정에 불타올라 명동에 당시 유명했던 사채업자인 백할머니라는 귀인을 만나 투자를 배웁니다.

 

적극적으로 배움에 임했으며, 직접 기업탐방까지 같이 다니며 실전 투자 경험을 쌓았다고 합니다.

 

20대에 투자자문사 창업

그리고 이때의 경험을 살려 20대때 투자 자문사를 차립니다. 그리고 각종 투자 자료를 정리하고 기업 리포트를 작성했습니다. 점점 업계에서 소문도 나고 나름 이름을 알렸지만, 한 개인의 역량으로는 더 큰 꿈을 꾸기 어려웠습니다.

 

동양증권 간판
동양증권

 

그래서 큰시장인 제도권으로 들어가자고 결심합니다. 여기서 또 저돌적인 성격이 나옵니다. 당시 동양증권의 상무님을 찾아가 '밑에서 이렇게 해주십시오!' 외칩니다. 며칠을 삼고초려하며, 결국 배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말단부터 시작해 두달여 남짓한 시간만에 대리를 답니다. 그리고 한신증권으로 이직해 지점장이 됩니다. 당시 전국 지점에서 300등이었던 지점을 일으키고자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남들이 안 하는 추가 분석자료를 만들어 베포 하고, 자신의 팀원들을 어벤저스로 만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합니다.

 

삼성전자 투자 250억 수익

들어오는 고객이 없다면, 직접 찾아가자! 적극적인 영업으로 1년만에 1조 원 이상의 주식 약정을 이뤄내게 됩니다. 전국 1등 지점을 달성한 것이죠.

 

성과를 인정받은 박현주는 압구정 지점으로 발령을 받게 됩니다.

 

더많은 책임과 성과를 보여야만 했던 박현주는 또 돌파구를 찾아 나섭니다. 1994년 사람들이 반도체라는 단어도 잘 모르던 시절 삼성전자에 집중하게 됩니다.

 

과거 발로 뛰며 배우던 경험을 살려, 삼성전자의 제조공장도 가보고 각 하청업체들을 샅샅이 분석했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들을 정리한 결과는 좋았습니다. 3교대로 쉬지 않고 공장이 돌아가고 있으며, 잘되는 모습을 파악하고 투자하기로 합니다.

 

지점 직원들을 교육시키고, 고객들을 설득하여 당시 500억원이라는 아주 큰돈을 투자하게 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삼성전자 역사적 주가 차트
삼성전자 주가

 

투자 당시 삼성전자의 주가는 10만원이었습니다. 약 1년 만에 주가는 15만 원까지 급속도로 상승했습니다. 수익률로 따지면 50%나 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게 됩니다. 500억을 투자했으니 1년 만에 250억을 벌게 된 것이죠.

 

더 놀라운 사실은 1995년에 코스피는 10% 이상 하락하던 시기였습니다. 시장대비 수익률로도 압도적인 성과였죠. 또 지점 1등을 찍고, 임원이 됩니다.

 

미래에셋 전설의 시작

그리고 좀있으면 imf가 다가오는데요. 이 낌새를 미리 알아차리고, 직장에서 나와 창업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미래에셋이 시작됩니다. 박현주 회장은 모든 것을 사업에 올인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위기가 찾아옵니다. imf가 온 것이죠.

 

위기를 맞이했지만, 여기서 역발상 투자를 합니다. 당시 금리가 하늘 높은 줄 오르고 오르고 있었는데, 지금보다 더 오르게 된다면 살아남을 기업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회사의 모든 자금을 채권에 전부 투자합니다. 아주 과감한 투자 결정은 결과적으로 성공했습니다.

 

박현주 펀드가 신문에 실린 장면
박현주 펀드

 

그리고 좀 더 사이즈를 키우기 위해 아직 회복하지 못한 주식시장에 투자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코스피는 300포인트 수준이었습니다. 이때 아주 강력한 승부수를 띄우기 위해 이름을 걸고 펀드를 만듭니다. 그 유명한 박현주 펀드입니다. 회사는 신생이라 유명하진 않았지만, 증권맨 시절 승승장구하던 박현주를 알던 개인투자자들은 이름을 믿고 돈을 맡깁니다.

 

그리고 몇시간만에 펀드는 완판 됩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7개월 만에 수익률 100%를 달성합니다. 그리고 미래에셋의 이름을 전국구로 알리기 된 계기가 됩니다. 이후로도 승승장구합니다. 닷컴 버블 시기 다음에 투자하고 수 백억의 차익을 남기기도 했으며, 미래에셋증권을 창업하고, 보험사를 인수하고 그룹사로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증권사 1위 달성

그리고 대우증권을 인수해 몸집이 커진 미래에셋대우는 당당하게 증권사 1위가 됩니다.

 

미래에셋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로 지금의 자리를 만들어낸 박현주 회장. 앞으로의 횡보는 어떨까요? 최근 유튜브를 통해 직접 투자에 관한 조언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기도 했는데요. 지금도 날카로운 분석과 미래를 내다보는 시야가 엄청난 내공을 증명하는 듯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유튜브에 박현주를 검색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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